혼자 사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해봤을 상상이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 밖에서 좀비 사태가 터지면 나는 이 집에서 며칠을 버틸 수 있을까. 저는 이 상상을 하고 나면 꼭 찬장을 열어 라면 개수를 세는 버릇이 있는데, #살아있다는 정확히 그 상상을 두 시간짜리 영화로 만든 물건입니다. 유아인과 박신혜가 아파트 두 동에서 벌이는 생존기이고, 이 글은 결말까지 담은 리뷰이니 스포일러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제 점수는 10점 만점에 6점입니다.#살아있다 리뷰: 원룸에서 시작된 재난가족들이 외출한 아침, 게이머이자 BJ인 준우(유아인)는 여느 때처럼 늦잠에서 일어나 방송을 켭니다. 그런데 시청자들의 채팅이 이상합니다. 밖을 보라고. 창밖은 이미 아비규환입니다. 사람을 공격하고, 비명을 지르고, 눈에 핏발이 선 채 ..
일요일 오후의 TV 명화극장에서 더 록과 아마겟돈을 보며 자란 세대가 있습니다. 제가 그렇습니다. 니콜라스 케이지가 초록 구슬을 든 채 벌벌 떨던 얼굴을 수십 번씩 돌려 본 세대. 그래서 백두산을 보는 내내 저는 이상한 기시감에 시달렸습니다. 처음엔 오마주인가 했는데, 보다 보니 아니었어요. 이 글은 그 기시감의 정체에 대한 이야기이고, 줄거리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으며, 제 점수는 10점 만점에 3점입니다.백두산 영화 리뷰: 이상한 기시감의 정체줄거리부터 깔겠습니다. 백두산이 분화해 한반도가 흔들리고, 마지막 대폭발을 막을 방법은 하나 — 북한의 핵무기를 확보해 백두산 탄광 갱도에서 터뜨려 마그마방의 압력을 빼는 것. 폭발물 해체반 출신으로 전역을 코앞에 둔 조인창 대위(하정우)가 작전에 끌려가고, 핵..
살면서 영화를 보고 노트를 꺼낸 건 테넷이 처음이었습니다. 1회차를 마치고 나오는데 분명 대단한 걸 봤는데 그게 뭔지 설명할 수가 없더군요. 그래서 노트에 화살표를 그렸습니다. 오른쪽으로 가는 선 하나, 왼쪽으로 가는 선 하나, 그 둘이 만나는 지점들. 이 글은 그 노트를 옮긴 것입니다. 과학 이론은 걷어내고 이야기만 시간 순서로 다시 깔았으며, 결말과 닐의 정체까지 전부 다루는 완전한 스포일러 글이니 관람 후에 읽으시길 권합니다. 영화에 대한 제 점수는 10점 만점에 7점입니다.테넷 해석: 화살표 두 개로 읽는 영화알아야 할 규칙은 딱 하나입니다. 인버전 — 회전문이라는 장치를 통과하면 그 사람의 시간이 거꾸로 흐른다는 것. 영화 스스로도 원리는 미래의 기술이라고 퉁치고, 극 중 대사부터가 이해하지 말..
반도를 처음 본 건 2020년 여름, 마스크를 쓰고 들어간 극장에서였습니다. 좌석은 한 칸씩 비어 있었고 팝콘도 못 먹던 시절. 텅 빈 새벽 거리를 지나 집에 오는데 방금 스크린에서 본 폐허의 서울과 마스크 뒤의 현실이 묘하게 겹쳐서 기분이 이상했던 기억이 납니다. 부산행 4년 후의 세계를 그린 이 속편을 최근 다시 봤고, 제 점수는 10점 만점에 6점입니다. 후반부 전개와 결말은 이 글에 적지 않았으니 관람 전이어도 편하게 읽으셔도 됩니다.반도 영화 리뷰: 250만 달러짜리 귀향이야기는 부산행의 그 열차로부터 4년 뒤입니다. 좀비 바이러스가 한국을 집어삼켰고, 삼면이 바다인 반도는 그대로 버려진 땅이 됐습니다. 가까스로 홍콩으로 탈출했던 전직 군인 정석(강동원)은 난민 신세로 연명하다 홍콩 범죄조직의 ..
고백하자면 저는 영화에서 옥의 티를 찾아내는 재미로 보는 부류입니다. 시계 방향이 바뀌어 있다든가, 컵의 물 높이가 오락가락한다든가. 그런데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의 제작 비하인드를 파고들다가 완패를 인정했습니다. 제가 옥의 티라고 확신했던 장면이 알고 보니 치밀한 의도였거든요. 황정민, 이정재, 박정민이 만든 이 추격극의 촬영 뒷이야기들을 정리했습니다. 줄거리 언급이 있으니 스포일러에 예민하신 분은 관람 후에 읽으시길 권하고, 영화 자체에 대한 제 점수는 10점 만점에 7점입니다.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비하인드 총정리: 옥의 티 사냥 완패기영화부터 짧게. 신세계에서 브라더였던 황정민과 이정재가 7년 만에 지독한 적으로 재회한 추격극입니다. 마지막 청부 임무를 끝내고 파나마로 떠나려던 인남(황정민)이 방콕에..
남산에 케이블카를 타러 간 적이 있습니다. 연인들 자물쇠와 전망대 야경 사이에서 문득, 이 산의 이름이 한 시절에는 전혀 다른 뜻으로 불렸다는 생각을 했어요. 남산의 부장들은 그 시절의 남산, 그러니까 중앙정보부의 부장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결말이야 교과서에 있는 역사지만, 영화가 그 결말을 어떻게 채워가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이 글에 담겨 있으니 그 점은 참고하시고요. 제 점수는 10점 만점에 7.5점입니다.남산의 부장들 리뷰: 그 산의 다른 이름영화는 청문회로 문을 엽니다. 1970년대 후반, 미 하원 청문회장에 선 전직 중앙정보부장 박용각(곽도원). 자신이 한때 몸담았던 썩은 권력의 맨 끝에 있는 한 사람을 고발하겠다며 회고록까지 준비했다는 폭탄선언을 합니다. 워싱턴발 뉴스에 청와대가 뒤집히고, 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