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숙박업소에 들어가면 콘센트 구멍을 괜히 한 번 들여다보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불법 촬영이라는 범죄가 우리 일상에 심어둔 불안이죠. 그래서 먼저 분명히 적습니다. 이 범죄는 실재하고, 피해자들의 고통은 사회적 죽음이라 불러도 지나치지 않으며, 피해자 보호와 가해자 처벌은 논쟁의 대상이 아닙니다. 라미란과 이성경의 걸캅스는 바로 그 의제를 정면에 내건 영화였고, 이 글의 비판은 그 의제가 아니라 의제를 담은 그릇 — 영화의 전달 방식과 완성도 — 를 향합니다. 이 영화를 유쾌하게 본 분들의 감상도 정당하다는 것을 미리 밝혀두고요. 원본 리뷰어는 0점을 매겼지만 제 점수는 배우들의 몫을 반영한 10점 만점에 2점입니다. 결말 언급 있는 리뷰이니 참고하세요.걸캅스 리뷰: 민원실의 시누이와 올케박미영(라미란..
주차장에서 문콕을 당한 적이 있습니다. 범퍼의 흠집보다 오래 기억에 남은 건 와이퍼에 끼워져 있던 쪽지였어요. 죄송합니다, 연락 주세요 — 삐뚤빼뚤한 글씨의 그 한 줄이 고마워서 수리비를 반만 받았습니다. 뺑반은 그 쪽지를 남기지 않고 떠난 사람들을 쫓는 이들의 이야기입니다. 공효진, 류준열, 조정석의 추격극이고, 이 글은 결말을 적지 않은 리뷰이니 관람 전이어도 편하게 읽으셔도 됩니다. 제 점수는 10점 만점에 4.5점입니다.뺑반 리뷰: 좌천된 에이스와 감식의 귀재주인공 은시연(공효진)은 원래 경찰 특수본의 에이스였습니다. 재벌 정재철(조정석)과 경찰 수뇌부의 유착 — 돈가방이 오갔고 그 장면이 담긴 블랙박스가 존재한다는 — 을 캐다가, 결정적 물증을 확보하지 못한 채 단독 행동이 문제가 되어 징계를 ..
누구에게나 혀가 기억하는 분식집이 하나쯤 있습니다. 제 경우엔 학교 앞 지하상가의 라면집이었는데, 훗날 일부러 찾아갔더니 가게는 사라지고 휴대폰 매장이 들어서 있더군요. 내안의 그놈의 첫 장면에서 그 헛헛함이 겹쳐 보였습니다. 고급 양복의 사내가 낡은 분식집을 찾아가 라면 맛이 옛날 같지 않다고 투덜대는 장면 — 그가 찾던 건 라면이 아니라 그 라면을 끓여주던 사람이었다는 걸 영화는 천천히 알려줍니다. 박성웅, 진영, 라미란의 영혼 체인지 코미디이고 결말까지 담은 리뷰이니 스포일러에 유의하세요. 제 점수는 10점 만점에 6.5점입니다.내안의 그놈 리뷰: 뒤바뀐 영혼의 소동주인공 장판수(박성웅)는 조폭 출신의 사업가입니다. 재개발 구역의 세입자를 몰아내는 일에 부하들을 보내고, 국밥집 사장 소리를 듣던 시..
초등학생 때 동네 바둑교실을 석 달 다니고 그만뒀습니다. 원장 선생님의 한마디 때문이었죠. 너는 수읽기가 안 되는구나. 어린 마음에도 그 말은 오래 남아서, 신의 한 수 귀수편의 소년이 같은 말을 듣는 장면에서 옛 상처가 덧났습니다. 기재가 전혀 없다 — 다만 이 영화의 소년은 저처럼 바둑판을 접는 대신, 그 말을 한 사람을 평생의 과녁으로 삼습니다. 권상우 주연의 바둑 액션 활극이고, 결말과 반전까지 담은 리뷰이니 스포일러에 유의하세요. 제 점수는 10점 만점에 6점입니다.신의 한 수 귀수편 리뷰: 기재가 없다던 아이이야기는 1988년에서 시작합니다. 훗날 귀수라 불릴 소년은 프로기사 황덕용의 집에 더부살이하며 잔심부름으로 연명하고, 하나뿐인 혈육인 누나 수연은 그 집의 청소일로 동생의 바둑 수업비를 ..
명절 밤이면 친척 어른들의 고스톱 판을 어깨너머로 구경하곤 했습니다. 판돈이라야 백 원짜리 동전 무더기였지만, 어린 눈에도 신기했던 건 패가 아니라 사람이었어요. 큰이모부는 좋은 패가 들어오면 헛기침을 했고 작은삼촌은 고민할 때 꼭 다리를 떨었죠. 타짜: 원 아이드 잭의 주인공이 밥벌이하는 방식이 정확히 그것입니다 — 패가 아니라 사람을 읽는 것. 박정민과 류승범의 타짜 3편이고, 이 글은 중반의 큰 판 직전까지만 다루며 결말은 적지 않았습니다. 제 점수는 10점 만점에 5점입니다.타짜 원 아이드 잭 리뷰: 화투에서 포커로타짜 3편은 판부터 갈아엎습니다. 화투장이 오가던 시리즈의 무대가 이번엔 포커 테이블입니다. 주인공은 도일출(박정민). 공무원 시험 준비생 간판을 달고 있지만 실상은 하우스를 전전하는 ..
실화 기반 영화를 보고 나면 도지는 버릇이 있습니다. 엔딩크레딧이 오르자마자 극장 로비에서 검색창부터 여는 것. 블랙머니는 그 버릇이 역대급으로 도진 영화였습니다. 나라의 은행 하나가 통째로 팔려나간 이야기라는데, 화면 속 숫자들이 진짜라면 잠이 안 올 일이었으니까요. 이 글은 조진웅, 이하늬 주연의 이 영화에 대한 리뷰 겸, 실제 론스타 사건과의 팩트체크 정리입니다. 결말 언급이 있고, 제 점수는 10점 만점에 6.5점입니다.블랙머니 실화 팩트체크: 검색창을 열게 만드는 영화영화의 골격부터. 성추문 누명을 벗으려 사건을 파던 검사 양민혁(조진웅)이 대한은행 헐값 매각의 실체와 마주하고, 거대 로펌 출신 엘리트 변호사 김나리(이하늬)가 그 판의 안팎에서 흔들리는 이야기 — 모델은 2003년 외환은행이 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