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모바일 청첩장 하나에 엄지손가락이 멈칫한 적이 있습니다. 보낸 사람은 학창 시절의 첫사랑이었던 동창 — 축하한다는 답장을 쓰는 데 평소의 세 배쯤 걸렸죠. 진심으로 축하했고, 진심으로 조금 쓸쓸했습니다. 그 두 마음이 공존할 수 있다는 걸 그날 배웠습니다. 박보영, 김영광의 너의 결혼식은 바로 그 멈칫의 영화입니다. 제목부터가 스포일러인 — '나의'가 아니라 '너의' 결혼식이라는 — 첫사랑 연대기죠. 네 번의 만남과 어긋남은 전부 다루되 마지막 장면의 표정만은 접어두었으니, 관람 전이어도 괜찮습니다. 제 점수는 10점 만점에 7점입니다.너의 결혼식 리뷰: 전학생 환승희시작은 고등학교입니다. 옥상 서열 싸움과 잔소리가 일상인 문제아 황우연(김영광) 앞에, 전주에서 강릉까지 온 전학생 환승희(박..
고백하자면 저에게도 안락의자 탐정 시절이 있었습니다. 유명 미제사건 정리 글을 새벽까지 정주행하며 댓글로 추리를 보태던 밤들 — 현장 한 번 가본 적 없으면서 "범인은 가까운 사람"이라 확신하던 그 근거 없는 자신감이요. 탐정: 더 비기닝의 강대만은 그 새벽의 저를 스크린에 옮겨놓은 듯한 남자입니다. 권상우와 성동일의 이 코믹 수사물을 결말의 범인까지 전부 담아 정리하니 스포일러에 유의하시고 — 제 점수는 10점 만점에 6.5점입니다.탐정 더 비기닝 리뷰: 안락의자 탐정, 현장에 서다강대만(권상우)은 만화방을 운영하는 집안의 공인 비호감 가장이자 미제 사건을 다루는 파워블로거입니다. 수입이 시원찮은 이유는 틈만 나면 형사 친구 준수가 있는 경찰서로 달려가기 때문 — 광역수사대의 레전드 노태수(성동일)가 ..
어느 날 문득, 우리 집에 가족사진이 한 장도 없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각자의 증명사진은 서랍마다 있는데 넷이 같이 찍은 것은 빛바랜 돌잔치 액자가 마지막 — 그래서 어느 명절에 어색함을 무릅쓰고 사진관엘 갔죠. 그것만이 내 세상을 보다가 그 사진관의 공기가 떠오른 장면이 있습니다. 이병헌, 박정민, 윤여정, 한지민이 만든 이 가족 영화의 심장이 바로 그 장면에 있거든요. 어머니의 비밀이 드러나는 지점까지만 다루고 결말은 접어둔 리뷰이니 관람 전이어도 괜찮습니다. 제 점수는 10점 만점에 7점입니다.그것만이 내 세상 리뷰: 17년 만의 재회, 처음 만난 동생주인공 조하(이병헌)의 현재부터. 한때 WBC 웰터급 챔피언까지 지냈던 그는 이제 만화방에 더부살이하며 스파링 아르바이트로 연명하는 신세입니다. 그마..
어릴 적 어느 날, 엄마가 장롱 깊은 곳에서 제 돌반지를 꺼냈습니다. 나라가 어려워서 금을 모은다고 했죠. 뜻도 모르면서 괜히 목이 메던 그 풍경 — 훗날 그것이 350만 명이 참여한 금 모으기 운동이었음을 배웠습니다. 국가부도의 날은 그 돌반지가 장롱에서 나와야 했던 이유에 관한 영화입니다. 김혜수, 유아인, 허준호, 조우진이 1997년의 일주일을 세 갈래로 나눠 짊어지는 이야기 — 실제 역사의 아픔이 바탕인 만큼 담담하게 쓰려 합니다. 결말까지 담은 리뷰이니 참고하시고, 제 점수는 10점 만점에 7점입니다.국가부도의 날 리뷰: 국가부도까지 일주일시작은 환호입니다. 국민소득 1만 달러 돌파, OECD 가입 — 선진국의 문턱에 섰다는 뉴스가 울려 퍼지던 시절(실제 당시 뉴스 화면들이 그대로 쓰였습니다)...
대학 시절 자전거를 도둑맞고 신고하지 않았습니다. 어차피 못 찾는다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만 거죠. 그러니까 제 자전거는 이 세상 어느 통계에도 잡히지 않은 도난 사건입니다. 암수살인이라는 낯선 제목이 바로 그 이야기입니다. 암수범죄 — 실제로 일어났지만 신고되지 않거나 인지되지 못해 공식 통계에 잡히지 않는 범죄. 자전거라면 씁쓸하고 말 일이지만 그것이 사람의 목숨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김윤석, 주지훈의 이 실화 모티브 수사극을 결말까지 담아 정리합니다. 실존 피해자들이 계신 사건이 바탕인 만큼 이 글은 절제된 서술로 쓰려 합니다. 스포일러에 유의하시고, 제 점수는 10점 만점에 7점입니다.암수살인 리뷰: 교도소에서 걸려온 전화시작은 한 통의 전화입니다. 부산의 형사 김형민(김윤석)에게 교도소에..
다이어트 3주 차의 밤 11시, 배달 앱을 켠 손가락 위에서 두 개의 목소리가 싸운 적이 있습니다. 먹어, 치킨은 살 안 쪄 — 참아, 3주가 아깝지 않냐. 결국 반반 무 많이로 협상이 타결되던 그 밤 깨달았죠. 내 안에도 베놈이 산다는 걸. 영화 베놈은 그 내적 사투를 외계 생명체와의 동거로 바꿔놓은 이야기입니다. 머릿속에서 쉴 새 없이 떠들고 사사건건 참견하는데, 가끔은 이상하게 든든한 또 하나의 나 — 톰 하디의 이 안티히어로 영화를 결말과 쿠키까지 담아 정리합니다. 스포일러에 유의하시고, 제 점수는 10점 만점에 6점입니다.베놈 리뷰: 루저에게 찾아온 외계인이야기는 외계 생명체 심비오트를 싣고 돌아오던 라이프사의 우주선이 추락하면서 시작됩니다. 수거 과정에서 한 마리가 사라지는데, 이 녀석은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