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졸업식 날, 우리 반은 운동장 구석에 타임캡슐을 묻었습니다. 10년 뒤에 모여서 파자던 약속 — 그러나 그 10년이 지나던 해에 저는 그 도시에 없었고, 아마 아무도 파러 가지 않았을 겁니다. 땅속 어딘가에 아직 묻혀 있을 열세 살의 편지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조금 간지럽죠. 차태현, 전지현의 엽기적인 그녀(2001)는 그 간지러움을 국민적 추억으로 만든 영화입니다 — 소나무 아래 타임캡슐을 묻고 2년을 기다리는 이야기이자, 그 해 극장가를 사로잡고 아시아 전체로 번진 전설의 로코. 감독·배우 코멘터리 기반의 비하인드와 명대사의 비밀까지 결말 포함으로 정리하니 스포일러에 유의하시고, 제 점수는 10점 만점에 8점입니다.엽기적인 그녀 리뷰: 코미디의 탈을 쓴 멜로족보부터 각별합니다. 1999년 PC..
휴대폰 연락처를 정리하던 밤, 한 이름 앞에서 손가락이 멈춘 적이 있습니다. 몇 년째 연락이 끊긴 옛 친구 — 지우자니 저릿하고 두자니 쓸쓸해서, 결국 아무것도 못 하고 화면을 닫았죠. 유오성, 장동건의 친구(2001)는 그 밤의 마음을 두 시간으로 늘려놓은 작품입니다. 조폭 영화의 외피를 썼지만 본론은 우정이 어긋나는 속도와, 그 어긋남을 되돌리기엔 늦어버린 남자들의 회한 — 한국 영화사의 그 전설을 명대사와 실화 배경까지 담아 결말까지 정리하니 스포일러에 유의하시고, 제 점수는 10점 만점에 8점입니다.친구 영화 리뷰: 1976년 부산의 네 소년출발점은 비슷했습니다. 싸움이라면 학교 제일이자 건달 두목의 아들인 준석(유오성), 장의사의 아들로 그 그늘에서 2인자로 자란 동수(장동건), 까불이 중호, ..
학창 시절 쉬는 시간의 공식 종목은 팔씨름이었습니다. 책상 하나를 사이에 두고 전교 서열이 정리되던 토너먼트 — 그게 재밌었던 이유는 이길지 질지 아무도 몰랐기 때문이었죠. 마동석 주연·기획의 챔피언은 안타깝게도 처음부터 끝까지 이기는 사람이 정해진 팔씨름이었습니다. 미리 밝혀두면 마동석이라는 배우의 매력과 그를 보러 간 선택은 온전히 정당하며, 이 글의 혹평은 각본과 기획을 향합니다 — 원본 리뷰어 역시 그의 제작 시도들을 응원한다는 전제 위에서 칼을 들었고요. 제 점수는 10점 만점에 3.5점입니다.챔피언 영화 리뷰: 이기는 게 정해진 팔씨름줄거리는 한 문장입니다. LA에 사는 전직 팔씨름 선수 마크(마동석)가 자칭 에이전트 친구 진기(권율)의 설득에 한국으로 와 대회에 출전하며, 자신을 입양 보냈던..
어린 시절 변신 로봇 장난감을 하나 갖고 있었습니다. 자동차에서 로봇으로, 로봇에서 다시 자동차로 — 관절이 헐거워져 팔이 덜렁거릴 때까지 변신만 수백 번을 시켰죠. 생각해보면 그 재미는 로봇도 자동차도 아니라 '변신하는 순간' 그 자체였습니다. 헤일리 스타인펠드 주연의 범블비는 그 순간의 설렘으로 돌아간 영화입니다 — 산으로 갔던 트랜스포머 프랜차이즈가 초심의 폐차장으로 돌아온 이야기. 리부트의 성격과 시리즈 순서까지 담아 정리하며, 이야기는 설정과 만남까지만 다루니 관람 전에 읽으셔도 좋습니다. 제 점수는 10점 만점에 7점입니다.범블비 리뷰: 폐차장에서 찾은 초심이 영화를 다룬 리뷰어의 여정이 많은 팬들의 마음을 대변합니다. 2007년 트랜스포머 1편의 엄청난 스케일과 충격은 로봇에 무관심하던 사람..
친구가 하는 FPS 게임을 옆에서 구경하다 멀미가 난 적이 있습니다. 본인은 신들린 듯 적진을 누비는데 보는 저는 흔들리는 1인칭 화면에 속이 울렁거렸던 것 — 그날 배웠죠. 하는 재미와 보는 재미는 완전히 다른 종목이라는 걸. 하정우, 이선균의 PMC: 더 벙커는 그 두 종목 사이에 과감히 다리를 놓으려 한 실험작입니다 — 1인칭 슈팅 게임의 감각을 스크린에 구현하겠다는 야심, 그리고 그 야심이 낳은 호불호. 더 테러 라이브의 김병우 감독이 5년 만에 내놓은 작품을 호불호 해부 중심으로 정리하며, 생사의 결말은 함구하니 관람 전이어도 괜찮습니다. 제 점수는 10점 만점에 4.5점입니다.PMC 더 벙커 리뷰: 지하 30미터의 실험제목의 교양부터. PMC(민간군사기업)는 영화적 상상이 아니라 실존하는 산업..
시험 기간 독서실에서 옆자리의 눈총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이어폰에서 새어 나온 비트에 나도 모르게 발장단을 치고 있었던 것 — 머리는 공부를 하는데 발이 먼저 리듬에 반응했죠. 몸이 먼저 아는 것들이 있습니다. 강형철 감독, 도경수 주연의 스윙키즈는 그 발장단의 비극적이고 아름다운 확장판입니다 — 이념으로 무장한 머리와 리듬에 홀린 발이 한 몸 안에서 싸우는 이야기. 거제 포로수용소의 실제 역사와 그 유명한 결말의 의미까지 담아 정리하니 스포일러에 유의하시고, 흥행은 아쉬웠으나 갈수록 재평가받는 이 작품에 제 점수는 10점 만점에 7.5점입니다.스윙키즈 리뷰: 미제 춤에 반한 인민 영웅무대는 한국전쟁의 거제 포로수용소입니다. 수용소 안에서조차 친공 포로와 반공 포로로 갈라져 피를 보는, 6.25의 축소..